남방계와 북방계

  인도·유럽 어족 가운데 인도 어파에 속한 인도·아리아 어 계통으로 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 전 인도의 고급 문장어로 오늘날까지 지속되는데, 불경이나 고대 인도 문학을 기록한 문자 산스크리트어(संस्कृता saṃskṛtā)는 인도의 옛 언어로,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의 경전이 이 언어로 되어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범어(梵語, 브라만에서 왔음)라고도 한다. 사어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학교에서 읽고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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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onesia

 
인도·유럽 어족 가운데 인도 어파에 속한 인도·아리아 어 계통으로 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 전 인도의 고급 문장어로 오늘날까지 지속되는데, 불경이나 고대 인도 문학을 기록한 문자 산스크리트어(संस्कृता saṃskṛtā)는 인도의 옛 언어로,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의 경전이 이 언어로 되어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범어(梵語, 브라만에서 왔음)라고도 한다. 사어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학교에서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일부 브라만은 산스크리트어를 모국어라고 하고 있다.
▲ 신시 배달국 시대 신지가 사슴의 발자국 모양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녹도문자-단군시대 가림토와 한글의 원형이 된다
1.

범어는 어떤 언어인가?
운허용하의 󰡔불교사전󰡕을 보면 범어는 B.

C. 800년 경에 인도로 전래된 셈계통의 외래어라 하여 간략히 소개되고 있으나, 컬러판 󰡔교육세계백과대사전󰡕을 보면 󰡔대영백과사전󰡕의 기록을 인용하여 자세히 밝혀주고 있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범어》범어는 산스크리트어(語)라고도 하는데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인도에 쓰이는 고급 문장어이다.

산스크리트는 <완성된 언어>라는 뜻으로 속어에 대한 아어(雅語)를 의미한다. 범어라고 한 까닭은 이 언어를 범천소설(梵天所說)의 언어라고 믿는 데에 있다.
《특질》범어는 명사․대명사 및 형용사의 성․수․격(性․數․格)의 어미변화로 주어․목적어 등을 나타내며, 또한 인칭․수․시상․법․태(人稱․數․時相․法․態)를 주로 동사의 어미변화로 나타낸다.
《문자》범어의 서사 인쇄에 쓰이는 문자를 데바나가리(Devanӑgarỉ)라 부른다. 이 문자는 47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지며, 자음은 33자로서 언제나 모음(a)를 동반한다.

이 문자의 기원은 멀리 북셈계(Sham系) 문자로서 가장 오래된 페니키아 문자에 있다.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쓰는 셈문자의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 둘 이상의 연속자음을 나타내려면 그 자음문자를 연합하여 하나의 결합문자를 만드는 따위가 이 문자의 특징이다.
《문법》문의 구조에 있어서 주어가 선두에 오고 동사가 끝에 오며, 수식어는 피수식어에 선행한다.
2.

범어는 인도어도 북셈계어도 아니다.

이상의 설명을 보면 산스크리트나 범어라는 어의에 인도나 그 민족을 나타내는 의미가 전혀 없다. 고급 문장어라 함은 고급문장에만 쓰이는 언어로서 생활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수억이 되는 인도인 가운데 오늘날 범어를 쓰는 인구수는 겨우 1,00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범어는 인도의 고유어가 아니라 외래어라는 사전의 기록이 틀림없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범어를 데바나가리라 하는데, ‘데바’는 천신(天神)이란 뜻이며, ‘나가’는 용(龍)이란 뜻으로서 데바나가리에도 인도를 상징하는 뜻이 전혀 없다. 더욱이 인도에는 천신이란 개념과 용이란 개념이 없으므로 천신 대신 제사를 뜻하는 브라흐만(Brahman), 또는 진아(眞我)를 뜻하는 아트만(Atman)을 종교적 최고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용 대신 뱀의 일종인 코브라 또는 물고기를 등장시킨다. 이를 보아도 범어는 원래 인도어가 아니라 외래어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범자는 북셈계의 페니키아 문자인가?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페니키아 문자의 자음이 22자인데” 범자는 자모가 47자, 자음이 33자로서 오히려 선대문자(先代文字)라고 하는 페니키아 문자보다 그 자모가 더 많다.

문자는 후대에 제작된 것일 수록 간소화되어 자모가 적은데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는 것도 북셈계 페니키아 문자만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고대 필순(筆順)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기 때문이다.

󰡔사전󰡕에 대승경의 범자를 북셈계 페니키아 문자에서 기원되었다고 함은 서구인에 의한 서구중심적 발상을 그대로 기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범서가 있었다.
다음은 우리민족에게도 범서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현재에도 원시사회가 있고 문명사회가 있듯이 상고시대에도 원시사회가 있는 반면, 문명사회가 있을 수 있다. 더욱이 그러한 사회에 합리적 성립종교가 있었고 경전이 있었다면, 당연히 문자가 있어야 한다. 󰡔태백일사󰡕를 보면 “신시에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에 우서(雨書)가 있었으며, 치우에 화서(花書)가 있었다. 투전문속(鬪佃文束)은 그 남은 흔적이다.

복희에도 용서(龍書)가 있었고, 단군에 신전(神篆)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글자와 글이 백산․흑수․청구 등 구려(九黎)에 널리 쓰여졌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문자와 글이 있었으며, 여기에 보이는 복희의 용서가 곧 범서인 것이다. 왜냐하면 범서는 이를 데바나가리라 하는데, 데바나가리는 용서(龍書)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복희의 용서는 곧 범서라 추정할 수 있고, 범서는 곧 복희의 용서라 추정할 수 있다.

󰡔삼국유사󰡕 요동성육왕탑기에도 고구려 동명성왕이 요동을 순례하던 중에 삼중토탑(三重土塔)을 발견하였는데, 그 밑에 묻혀 있던 명(銘)에도 범서가 쓰여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명에 쓰인 범서를 일연 승은 그 해설에서 서역문자라 함으로써 그 범서가 상고시대의 우리나라 문자인가, 아니면 인도에서 전래된 문자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시켰다. 삼중토탑을 발견한 때는 고구려 동명성왕 때로서 B.

C.

1세기 후반이다. 그때는 인도와 가까운 중국에도 석가불교가 전래되기 전이며, 우리나라에도 전래되기 전이다. 더욱이 그때는 대승불교마저 성립되기 전이다. 그러므로 삼중토탑을 석가불교의 불탑이라 할 수 없고, 명에 쓰인 범서도 인도에서 전래된 문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외에도 󰡔단기고사󰡕 제12세 단제 편에 “지금 황해도 구월산의 마한촌에 고대의 국문비 (國文碑) 한 개가 존재하니 범문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이는 범어를 모르는 사람이 범서를 보고 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범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원시 대승경이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서 인도로 전승되었다고 할 경우, 원시 대승경에 쓰여진 범서는 당연히 우리민족의 범서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범어는 인도의 고유어가 아니라 외래어이고, 북셈계 문자도 아님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4. 범어는 우리민족의 언어와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어의(語義)․어법(語法)․문자의 동일성 등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첫째, 범어의 어의가 우리말의 어의와 동일한 경우가 많다.
대승불교가 성립된 이래 대승경이 수차에 걸쳐 결집되면서 대승경에 쓰여진 범어의 용어가 인도어로 바뀌어 질 수도 있고, 우리민족의 어의도 2천여년 전부터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한문를 일상어에 병용하면서 변질에 변질을 거듭하였다. 그러므로 대승경 범서의 어의와 우리말의 동일성을 증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어의 동일성을 몇 개 지적하면
① 석가세존의 열반지인 구시국(拘尸國)을 구시나라(拘尸那羅)라 하는데, ‘나라(那羅)’는 곧 국가를 의미한다.

우리말에서도 국가를 ‘나라’라고 한다.
② ‘차마(叉摩)’는 ‘참다(忍)’는 뜻인데 우리말의 ‘참다’와 같다.

③ 파라사화(波羅奢華)는 ‘파란 잎’을, 파라니밀(波羅尼蜜)은 ‘파란 하늘’을 의미한다. 이를 보면 ‘파라’는 우리말의 ‘파랗다(靑)’와 같은 의미이다.
이와 같이 범어의 어의와 우리말의 어의가 동일하다. 이것 하나만을 보아도 대승경의 범어는 우리민족의 범어임을 추정할 수 있다.

둘째, 범어의 어법이 우리말의 어법과 동일하다.
① 범서는 그 문장구조에 있어서 감탄문을 제외하면 어떤 경우에도 주어가 선두에 오고 동사가 끝에 오며 수식어는 피수식어에 선행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우리말의 어법과 그대로 일치된다.
② 범서는 명사․대명사․형용사의 성․수․격이 그 어미 변화로 주어․목적어 등을 나타내며, 또한 인칭․수․시상․법․태를 주로 동사의 어미변화로 나타낸다.

우리의 언어도 범어와 같이 명사․대명사․형용사의 어미변화 즉 조사의 변화에 의해 주어․목적어 등을 나타내며(예컨대, 명사 또는 대명사에 “는․은․가․이”를 붙이면 주어가 되고, “을․를”를 붙이면 목적어가 된다), 또한 동사의 어미변화로 인칭․수․시상․법․태를 나타낸다(예컨대, 하였다․하다․할 것이다․하겠다․하라․하겠습니다․하자․합시다․하시오․되었다․되다․될 것이다․되겠다․되라․되겠습니다․되자․됩시다․되시오 등으로 변해서 인칭․수․시상․법․태를 나타낸다).

이 문제는 하나의 상식으로서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③ 범서는 자음마다 언제나 모음과 주로 (a)를 동반하는데, 우리의 언어를 표기하는 한글도 자음마다 언제나 모음을 동반한다. 그러나 모음 (ㅏ)를 특별히 동반하지는 않는다. 이는 역사의 변천에 따른 음운의 변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④ 고대의 범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는데, 우리민족의 고대 필순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다.
이상과 같이 범서의 어법도 우리민족의 어법과 그대로 일치한다. 여기에서 더욱 대승경의 범서는 우리민족의 범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셋째, 대승경 범자의 자형이 우리민족의 범자와 유사하다고 추정된다.

일연 승은 우리민족의 범자를 서역문자라 하였다. 이는 우리민족의 범자의 자형이 대승경의 범자와 동일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범자를 용서라 하여 그 글자 모형이 용 같음을 추정할 수 있는데, 대승경의 범자가 일률적으로 용의 형상을 띠고 있다. 또한 “범자와 한글이 그 자형이나 자음에 있어서 서로 유사한 점이 많아 한글이 범자에서 기원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지금까지의 소론을 간략히 정리하면
① 대승경의 범어(범서)는 인도의 고유어가 아니라 외래어였다.
② 대승경 범자의 기원이 북셈계 페니키아 문자와 무관하였다.

③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범서가 있었다.
④ 대승경 범어의 어의가 우리말의 어의와 같은 경우가 많았다.
⑤ 대승경 범어의 어법이 우리말의 어법과 그대로 일치되었다.
⑥ 대승경 범자의 자형이 우리민족의 범자와 동일하다고 추정되었다.
이상과 같으므로 원시 대승경의 범서는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범서라고 결론을 내려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더욱이 범어는 이를 천축어(天竺語)라고도 한다.

그런데 석가세존 이전의 천축은 우리나라 고조선인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범어는 당연히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언어라 할 수 있다.
5. 인도에 우리민족의 한글이 있다.
그런데 남인도 구자라트주(州)의 간판에서 한글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신왕오천축국전(新往五天竺國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구자라트주의 간판에서 기이하게도 한글과 비슷한 글자를 발견하고 놀랐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글과 너무나 비슷하여 한글식대로 읽어나갈 수가 있었다.

독일의 어느 학자가 옛날에 한글이 인도의 드라비디안어와 닮은 데가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드라비디안어(語)가 아니라 구자라트어(語)를 잘못 알고 쓴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구자라트어에 한글의 모양과 많이 닮은 것은 자음 가운데 ㄱ ㄴ ㄷ ㄹ ㅁ ㅅ ㅇ 등이고, 모음은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의 열자가 꼭 같았다. 종자음(終子音) 즉 받침까지도 비슷하게 쓰고 있다. 우리들은 구자라트에 있는 동안 소리를 내어 간판을 한글식으로 읽으며 다녔다.

이상과 같이 고조선 시대에 이미 한글이 있었고, 남인도 구자라트주에 한글과 비슷한 문자를 쓰고 있다니, 그 문자는 고조선 시대의 한글이라 할 수 밖에 없으며, 신선도의 경전이 남인도에 전해짐으로써 고대 한글도 전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도 외에 일본에도 가림토문자가 전해져 신대문자(神代文字)인 아히루(阿比留) 문자가 되었는데, 이는 지금 일본 대마도(對馬島) 이즈하라(嚴原) 대마역사 민속자료관과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伊勢神宮) 등에 아직도 보관되어있다. 그 밖에도 2300년 전에 지은 스리랑카의 캔디시(市) 부근 패엽경사(貝葉經寺) 바위에도 사찰건립 당시에 쓴 것으로 보이는 가림토문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으며, 남미의 볼리비아 글자도 가림토와 비슷하다고 한다.
6. 남인도에 우리민족의 언어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전이 남인도에 전하여졌다면, 경전은 곧 문자화된 언어로서 우리민족의 언어도 남인도에 전해질 수 있다.

프랑스의 선교사 달레(1874년, 조선교회사:朝鮮敎會史)와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1906년, 한국어와 드라비다 제어의 비교문법)는 한국어와 드라비다어가 동계임을 주장하면서 지금도 드라비다어 가운데 우리말과 같은 말이 1300여개나 된다고 하였다. 예컨대, 우리말의 아버지는 드라비다어로 아바지(appacchi), 엄마는 암마(amma), 도령은 도렌(toren), 얼(정신)은 얼(ul), 꽁지는 꼰티(konti), 눈은 눈이(nuni), 목은 막(mak), 남(他人)은 남(nam), 님은 님(nim), 골(谷)은 골리(kolli), 도랑은 두라이(turai), 나라는 날(nar), 바람은 발리(vali), 그물은 굼(kum), 풀은 풀(pul) 등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클리핀저(Clippinger)도 인도 고대어인 드라비다어종(語種) 속에서 한국어의 수 많은 단어들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예컨대, 우리말의 쌀(米)은 드라비다어의 ‘살’, 벼(禾)는 ‘비야’, 풀(草)은 ‘풀’, 알(粒)은 ‘아리’ 등이다. 이런 유사한 단어들을 이 미국학자는 100개나 찾아내었다.
*글/ 제주대 안창범 교수
[자료]한반도와 남방
1.

한반도어와 인도의 드라비다어.아리안어
놀랍게도 우리말과 유사한 어휘는 드라비다어와 아리안어계의 말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드라비다어에서는 약 1,200개, 힌디어・우루두어・다리어・희랍어・영어 등의 아리안어계에서는 400개 이상의 유사 어휘가 발견되었다. 알타이어에서 발견되는 유사 어휘는 불확실한 음운 대응 방법을 사용해도 우리말과 유사한 어휘가 상대적으로 적다.
<우리말 어휘와 아리안・드라비다어 유사 어휘 비교의 예:수사>
한국어
아리안어
알타이어
다리어
희랍어
몽고어
터키어
하나

에나
니키
베르
둘(두)

두오
하여르
이키
셋(세)

트리아
오릅
웃취
* 우리말 ‘애’는 하나(1)의 뜻이 있음.
논 애벌매기 → 첫 매기, 애벌 빨래 → 첫 빨래
〈동작어〉
가요 → 자요(힌디어, 네팔어)
와요 → 와요(힌디어, 네팔어)
〈천체 기상어〉
라(太陽) → 라(중동, 남부 유럽, 이집트)
수리(太陽) → 수리(다리어, 우루두어, 힌디어)
해 또는 새 → 하(산스크리트어)
별 → 빌(드라비다어)
구름 → 쿠룬(다리어)
달 → 탈(다리어)
〈인칭어〉
나 → 나(드라비다어)
너 → 니(드라비다어)
어머니 → 엄마(드라비다어)
아버지 → 아뻐지(싱할리어)
〈장소어〉
골(邑, 村) → 골(다리어)
…데 → …데(희랍어)
부리 또는 벌 → 푸라(힌디어), 부리(태국어), 풀(영어)
바다 → 바하르(다리어, 아랍어)
내(川) → 나하르(다리어, 아랍어)
〈곡식 및 음식어〉
보리 → 바어리(영어)
밀 → 밀(제분소; 영어)
쌀 → 살 또는 할(힌디어, 드라비다어)
벼 → 비아(힌디어, 드라비다어)
밥 → 밧(힌디어, 드라비다어)
〈긍정 및 부정〉
예 → 예스(영어 등 아리안어계)
않 → 안, 안티(영어 등 아리안어계)
〈고대어〉
어라가(백제의 왕) → 라자(힌디어, 우루두어, 다리어)
어륙(백제의 왕비) → 렉(다리어)
* ‘어’는 경칭임.

어머니, 어버이 등
〈기타〉
불(火) → 풀(고대 영어), 퓔(희랍어)
아침(고대어 ‘아시’) 또는 새벽 → 아시(희랍어), 아룬(태국어), 아사(일본어), 사바흐(아랍어), 수바하(힌디어)
2. 한반도 문화와 인도.동남아 문화의 유사성
우리 문화의 대부분은 동남 아시아와 서남 아시아의 것과 대단히 유사하다. 이것은 고대 한반도 문화와 한반도 사람들의 인도.동남아 유입과 상호 문화교류 및 고대 해상제국 백제의 식민지 개척과 연결되는 사항이라 할 수 있다.
⑴ 신앙 및 무속
-태양 숭배: 태양을 향해 절을 하고, 태양을 수레바퀴 문양으로 나타내는 등 인도의 것과 가장 유사하다.

-솟대 및 소도: 솟대에 새(鳥)를 올려놓거나, 소도를 신성 지역으로 하는 등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의 것과 유사하다.
-남성 성기 숭배: 인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한국으로 이어지는 이동 경로가 확인된다.
-무속: 우리의 무속은 북방의 엑스타시(탈혼)보다는 동남아의 포재션(빙의)에 더 가깝다.
-띠배: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지에서 오늘날에도 대대적으로 행하고 있다.

⑵ 탄생 설화 : 한반도는 천손설화와 난생설화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천손 설화: 인도, 라오스, 태국 동북부 지역의 것과 일치한다.
-난생 설화: 베트남,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의 용의 알, 박, 오이 등의 설화와 유사하다.
* 알타이어족의 주된 탄생 설화는 이리(투르크족), 흰사슴(몽고) 등 동물 설화이다.
⑶ 농경 문화
쌀, 호미, 낫, 도리깨 등 남방의 것과 같다. 또한 가축으로는 돼지, 닭, 과하마 등 모두 남방 혹은 서방의 것이 대부분이다.
⑷ 음식 문화
김치(인도,독일), 젓갈(태국, 라오스, 인도네시아), 장아찌(태국, 베트남), 묵(태국, 베트남), 막걸리(라오스, 베트남), 된장・고추장(태국) 등 우리의 주요한 음식은 대부분 동남아의 것과 유사하다.
⑸ 장사법
-지석묘(고인돌): 세계적으로 고인돌의 분포를 보면 우리 나라로부터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아프가니스탄, 요르단, 독일, 프랑스 등 모두 남방 또는 서방의 선상에 있다.

-옹관묘: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지에서 무수히 많은 옹관묘가 발견된다. 중국의 섬서성 부근에도 옹관묘가 출토된다.
-풍장: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것과 유사하다.
-적석묘: 북방에서 발견되는 적석묘를 만든 사람들인 스키타이족들은 알타이어족이 아닌 아리안어족이었다.
-석관묘: 북방, 남방, 서방 각처에서 발견된다.
⑹ 음악과 춤
우리 음악의 특징인 무장단,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과 3박자의 형식이 모두 태국, 인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적인 특징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더욱 뚜렷하다. 특히 와공후, 수공후, 생황, 거문고, 장고 등 우리 나라 전통 악기가 동남아 및 인도에서 많이 발견된다.
춤은 인도의 것과 가장 비슷하다. 특히 사자 탈춤(베트남, 라오스)이 전래된 장소는 동남아시아임이 확실해 보인다.
⑺ 놀이 문화
비석치기(동남아 일대), 자치기(베트남, 라오스), 꼬누(베트남), 구슬치기(캄보디아), 와양(인도네시아), 닭싸움(동남아 일대), 소싸움(중국 서남부, 인도네시아), 대젓갈 놀이(베트남) 등 우리 놀이 문화의 대부분이 동남아의 것과 같다.

⑻ 기타
애기 업기(태국, 미얀마), 빨래 방망이질(미얀마, 인도), 머리에 물건 이기(인도네시아, 인도), 성황당(오끼나와, 인도) 등 우리 민족 고유의 풍속 대부분이 남방의 것과 일치한다. 또《삼국 유사》에 나오는 김 수로 왕비 허 황후(인도), 신라 경문왕의 당나귀 귀(그리스), 나무꾼과 선녀(인도네시아)의 전설 등도 우리 민족의 남방과 서방의 관련설을 뒷받침해 준다.
3. 면역 유전자 및 체형
⑴ 면역 유전자(HLA)
우리 민족의 특징적 조직적 합성 항원 HLA-B-59는 인도의 수라스트란인, 미국 서북부의 백인계 인디언 혼혈족 등 아리안어족의 것과 같다.
⑵ 체형
우리 민족이 아시아인 중 키가 크고, 콧날이 오똑하고, 얼굴뼈가 수직으로 되어 있고, 신‧구석기 시대 만달인, 북한 검은모류 유적지의 승리산인 등의 머리 형태가 장두형(長頭形) 등 신체적으로 아리안어족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다.

[자료]유전자 분석으로 보는 한민족
한국인은 대부분 남방의 농경문화 민족에서 그리고 일부는 북방의 유목·기마 민족에서 비롯돼 ‘이중의 민족기원’을 지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한국인과 몽골인이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최근 다른 연구결과와 달리,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중국 베이징 한족과 만주족, 일본인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이 연구결과는 지금까지 한국인의 민족기원과 관련한 연구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가장 많은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다.
김욱 단국대 교수(인류유전학) 연구팀은 “한국인을 비롯한 중국·일본·베트남·몽골 등 동아시아 11개 민족집단에서 1949명의 유전자를 조사·분석한 결과 한국인은 북방계보다는 주로 남방계에서 비롯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러나 북방계도 뚜렷해 ‘이중의 민족기원’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 〈휴먼 지네틱스〉에 발표됐다.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위해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유전되는 두가지 염색체의 디엔에이(DNA)를 이용해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추적했다. 하나는 아버지에서 아들한테만 전수되는 ‘와이(Y) 성염색체’의 디엔에이이며, 다른 하나는 난자 세포에만 존재해 모계로 전수되는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다. 김 교수 연구팀은2001~2003년 한국과학재단 지원으로 11개 민족 738명의 와이염색체를, 2002~2003년엔 8개 민족 1211명의 미토콘드리아 염색체를 비교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어냈다.

먼저, 와이염색체를 분석한 결과는 ‘한국인의 원류는 북방 민족’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른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김 교수는 “16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현대인(호모 사피엔스)은 6만~8만년 전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이주 집단의 한 갈래가 2만~3만년 전 아시아 남쪽으로 가는 과정에서 와이염색체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엠(M)175’라는 유전자형을 지니게 됐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번에 Y염색체를 비교해보니 한국인 75%에서 이런 유전자형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한국인10명 가운데 7, 8명이 아시아 남쪽으로 이동하던 2만~3만년 전의 집단과 동일한 와이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몽골인을 뺀 동아시아인 대부분에서 엠175 유전자형은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이런 사실은 엠175 유전자형 집단이 중국 중북부인 황허·양쯔강 유역에서 농경문화를 이룩해 인구의 대팽창을 일으키면서 5천년 전쯤 한반도와 다른 아시아 남부로 퍼져나갔다는 유전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선 중국 중북부 농경민족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남방계와 별개로, 한국인에선 몽골·시베리아 북방계 와이염색체의 유전자형(20%)도 발견됐는데, 이는 남방계가 대규모로 옮아오기 이전에 알타이산맥이나 시베리아 바이칼 주변에서 빙하기를 피해 남하한 집단이 먼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풀이된다.

결국 “지금의 한국인은 한반도에 먼저 들어온 일부 북방계와, 대규모로 이동해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이 섞여 이뤄졌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이번 11개 민족집단의 비교분석을 통해, 2300년 전쯤 농경문화를 전한 야요이족이 한반도를 통해 일본 본토로 이주했다는 유전적 증거도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인이 주로 중국 중북부 농경문화에서 비롯했다는 와이염색체의 분석결과는 이 연구팀이 따로 벌인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의 분석결과와도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김 교수 연구팀의 결론은 ‘한국인과 몽골인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최근 다른 연구팀의 연구결과와 달라 논란을 일으킨다.
김종일 한림대 교수(생화학교실)는 ‘한국인 66명과 몽골인 72명의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를 분석한 결과 두 민족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는 중간 연구결과를 밝힌 바 있다.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우리는 한국·몽골인 사이의 유전적 관련성만을 연구한 것이며 연구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며 “이런 점에서 다른 결론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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